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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
Katy P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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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Katy Perry)는 미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방송인으로, 팝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며 독특한 스타일로 '캠프의 여왕'이라 불립니다. 2008년 앨범 'One of the Boys'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Teenage Dream' 앨범은 다섯 곡의 싱글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며 마이클 잭슨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꾸준히 활동하며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고,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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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 과거의 상처 태우며 강렬한 분노 표출…새 뮤직비디오 화제
6월 26일 공개된 케이티 페리의 신곡 ‘Watch It Burn’과 뮤직비디오가 화제입니다. 이 곡은 그녀의 2025년 11월 발매곡 ‘Bandaids’와 연결되는 이야기로,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분노와 솔직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케이티 페리는 “예전에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한 해는 꽤 힘들었고, 쉽게 희생자 코스프레에 빠질 수 있었다”라고 고백하며, 이번 곡을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고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뮤직비디오 속 케이티 페리는 전갈과 인간의 혼종으로 등장해 파괴적인 행위를 벌입니다. 특히 거대한 전갈 꼬리는 균형과 자기 수용을 상징하며, 그녀는 병원을 탈출하고 세차장에서 과거의 고통과 독성을 태워버리는 강렬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뮤직비디오에는 ‘Gaslight Magazine’과 ‘Slop Times’라는 가짜 잡지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고, ‘Don’t Believe Everything You Hear’라는 뉴스 속보가 TV에 나오는 등 다양한 이스터 에그가 숨겨져 있습니다. 케이티 페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분노하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줄 알았다”라며, 과거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현재 ‘내 인생의 사랑’이라 칭하는 저스틴 트루도와의 관계 덕분에 비로소 완전한 자신을 찾았다고 덧붙였습니다. ‘Watch It Burn’은 그녀의 2024년 앨범 ‘143’ 이후 6개월 만에 발매하는 신곡으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케이티 페리, 콘서트 무대에서 전 남자친구들 ‘디스’?…저스틴 트뤼도에 애정 과시!
6월 19일, 케이티 페리는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열린 O Son do Camiño 음악 페스티벌에서 전 남자친구들을 언급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공연 중 히트곡 “Never Really Over”를 부르던 케이티 페리는 무대 뒤에 거대한 가짜 아이폰을 설치하고, 전 남자친구들의 연락처가 팝업되는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팬들이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디플로, 존 메이어, 그리고 딸 데이지 도브 블룸의 아버지인 올랜도 블룸의 이름이 가짜 전화 수신 목록으로 등장했습니다. 케이티 페리는 ‘JM’으로 표시된 존 메이어에게는 기타 이모지와 함께 거부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보였고, 디플로에게도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OB’로 표시된 올랜도 블룸에게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잠시 기다리는 듯한 연기를 펼쳤는데, 이는 그의 가슴에 새겨진 스페이드 문신을 연상시키는 코드명으로 해석됩니다. 한편,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와의 로맨스를 과시하는 모습도 포착되었습니다. ‘JPJT’라는 이니셜과 캐나다 국기가 뜨자 케이티 페리는 거듭해서 통화 연결 버튼을 눌러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과거 결혼했던 러셀 브랜드는 이번 무대 연출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입니다. 케이티 페리는 2019년 올랜도 블룸과 약혼했지만, 9년 열애 끝에 2025년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당시 양측 소속사는 “최근 올랜도 블룸과 케이티 페리의 관계에 대한 많은 관심과 대화에 힘입어, 양측 대표는 올랜도와 케이티가 지난 몇 달 동안 관계 변화를 통해 공동 육아에 집중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는 E! Online의 원문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원문 보기](https://www.eonline.com/news/1433178/katy-perry-calls-out-exes-john-mayer-orlando-bloom-diplo-at-concert)*

케이티 페리, 과거 비키니 사진에 팬들 궁금증 폭발! “브라 사이즈는 얼마일까?”
6월 17일 공개된 케이티 페리의 과거 비키니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입니다. 2014년 호주 시드니 항구에서 촬영된 이 사진에서 케이티 페리는 밝은 핑크색 비키니를 입고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사진 속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대해 “브라 사이즈가 얼마일까?”라며 궁금증을 드러냈습니다. 최근 연인 저스틴 트뤼도와 로맨틱한 피크닉을 즐겼던 케이티 페리는 과거보다 날씬해진 모습으로 변화를 겪었습니다. 팬들은 그녀가 예전의 케이티 페리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 팬은 “몸매가 여전하다”라며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사진이지만, 당시 팬들은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대해 “가짜 태닝도 없고, 가짜 가슴도 없고, 문신도 없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청량해 보인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기사는 The Blast의 원문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원문 보기](https://theblast.com/807593/katy-perry-sunkissed-asked-her-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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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 엄격한 종교적 환경 속에서 피어난 팝스타의 탄생
케이티 페리(Katheryn Elizabeth Hudson)는 1984년 10월 25일 캘리포니아주 산타 바바라에서 펜테코스테파 목사인 메리 크리스틴 페리(Mary Christine Perry)와 모리스 키스 허드슨(Maurice Keith Hudson)의 딸로 태어났다. 두 부모 모두 젊은 시절 ‘wild’했던 삶을 뒤로하고 종교에 귀의했다. 케이티 페리는 영어, 독일, 아일랜드, 포르투갈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어머니를 통해 영화감독 프랭크 페리(Frank Perry)의 조카이기도 하다. 동생 데이비드(David) 또한 가수로 활동하며, 언니 앤젤라(Angela)가 있다. 케이티 페리는 세 살부터 열한 살까지 부모가 교회를 개척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랐고, 이후 다시 산타 바바라에 정착했다. 어린 시절 케이티 페리는 종교 학교와 캠프, 특히 애리조나의 파라다이스 밸리 크리스천 스쿨(Paradise Valley Christian School)과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 크리스천 스쿨(Santa Barbara Christian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다.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푸드 스탬프를 사용하거나 교회 집회에 음식을 제공하는 푸드 뱅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케이티 페리와 남매들은 어릴 적 ‘행운’이라는 단어가 루시퍼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럭키 참스’ 시리얼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고, ‘악마의 알’ 대신 ‘천사의 알’이라고 부르도록 요구받았다. 케이티 페리는 주로 복음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는데, 가정에서는 세속 음악이 일반적으로 권장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서 몰래 가져온 CD를 통해 대중 음악을 접하기 시작했고, 친구가 알라니스 모리세트(Alanis Morissette)의 “You Oughta Know”를 틀어준 것이 그녀의 작곡과 노래에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했다. 케이티 페리는 자신을 엄격하게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자기 통제와 겸손을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언니 앤젤라처럼 노래하고 싶었던 케이티 페리는 앤젤라의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연습했고, 부모님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부모님은 앤젤라가 받던 보컬 레슨을 케이티 페리에게도 받게 해주었고, 그녀는 아홉 살 때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부모님의 사역에 참여하여 아홉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교회에서 노래했다. 열세 살 생일에 첫 기타를 선물받은 케이티 페리는 자신이 쓴 노래를 대중 앞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10대 시절 케이티 페리는 “캘리포니아의 전형적인 소녀”처럼 보이기 위해 롤러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서핑을 배우기도 했다. 동생 데이비드는 그녀를 10대 시절 “톰보이”라고 묘사했고, 케이티 페리는 자신의 노래 “One of the Boys”에서 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케이티 페리는 춤 레슨을 받으며 스윙, 린디 홉, 지터벅을 배웠다. 열다섯 살에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GED 자격증을 취득하며 도스 푸에블로스 고등학교(Dos Pueblos High School)를 그만두고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노래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케이티 페리는 10대 시절 복음 음악 가수로 활동하며 레드 힐 레코드(Red Hill Records)와 계약하여 2001년 데뷔 앨범 ‘Katy Hudson’을 발매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레드 힐 레코드가 운영을 중단한 후, 그녀는 다음 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하여 세속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글렌 발라드(Glen Ballard), Dr. Luke, 맥스 마틴(Max Martin) 등 프로듀서들과 협업했다. ‘케이티 페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아이랜드 디잼 뮤직 그룹(The Island Def Jam Music Group)과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에서 계약이 해지된 후, 2007년 4월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 케이티 페리는 2008년 두 번째 앨범 ‘One of the Boys’를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 앨범은 논란이 있었던 미국 차트 1위곡 “I Kissed a Girl”과 “Hot n Cold”를 포함한 팝 록 앨범이었다. 이후 세 장의 후속 앨범이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디스코풍의 ‘Teenage Dream’ (2010)은 “California Gurls”, “Teenage Dream”, “Firework”, “E.T.”, “Last Friday Night (T.G.I.F.)” 등 다섯 곡의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곡을 배출하며 마이클 잭슨의 ‘Bad’와 동률을 기록했다. 2013년 발매된 후속 앨범 ‘Prism’은 이혼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팝과 댄스 요소를 가미하고, 자기 성찰, 일상, 관계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케이티 페리는 ‘Roar’와 ‘Dark Horse’ 뮤직비디오를 통해 Vevo에서 10억 회 조회수를 돌파한 최초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2017년 발매된 일렉트로팝 앨범 ‘Witness’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자유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2020년에는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Smile’을, 2024년에는 일곱 번째 앨범 ‘143’을 발매했다. 케이티 페리는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9곡의 1위곡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네스 세계 기록 4개, 빌보드 뮤직 어워드 5개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이 기사는 [Wikipedia](https://en.wikipedia.org/wiki/Katy_Perry)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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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재능과 고뇌를 담은 음악 세계…영향을 준 아티스트들의 면면
1975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타카푸나에서 태어난 엘라 마리야 라니 옐리치-오코너, 더 알려진 이름은 로드(Lorde)다. 로드는 귀족적인 이미지를 담고자 하는 의도에서 무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공연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로드는 2009년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계약을 맺고, 2011년 프로듀서 조엘 리틀과 협업하며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첫 번째 결과물은 EP ‘The Love Club’이었으며, 2012년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무료로 공개된 후 UMG를 통해 상업적으로 발매되었다. 이 EP의 타이틀곡 “Royals”는 국제적인 차트에서 성공을 거두며 로드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로드는 데뷔 스튜디오 앨범 ‘Pure Heroine’을 발매하여 비평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로드의 음악적 영감은 다방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드는 미국 재즈와 소울 음악가인 빌리 홀리데이, 샘 쿡, 에타 제임스, 오티스 레딩의 음악을 감상하며 그들의 ‘고통을 수확하는’ 능력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즐겨 듣던 캣 스티븐스, 닐 영, 플리트우드 맥의 음악을 접하기도 했다. ‘Pure Heroine’ 제작 당시에는 SBTRKT, Grimes, Sleigh Bells와 같은 전자 음악 프로듀서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보컬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식, 보컬 파트를 자르거나 레이어링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베일에 가려진 버리얼과 위켄드의 정체성에서 영감을 받아 “신비로움이 더욱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케이티 페리, 그레이스 존스, 제임스 블레이크, Yeasayer, Animal Collective, Bon Iver, 더 스미스, 아케이드 파이어, 로리 앤더슨, 칸예 웨스트, 프린스, 데이비드 보위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로드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작사가로서의 로드는 어머니, 즉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커트 보니것, 레이먼드 카버, 웰스 타워, 토비아스 울프, 클레어 베이예 워킨스, 실비아 플라스, 월트 휘트먼, T. S. 엘리엇과 같은 작가와 시인들의 문장 구조 또한 작사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두 번째 앨범 ‘Melodrama’를 작업하면서 로드는 더 1975, 특히 그들의 곡 “Somebody Else”, 필 콜린스, 돈 헨리, 리한나, 플로렌스 앤 더 머신, 톰 페티, 조니 미첼, 레너드 코헨, 로빈과 같은 음악가들의 멜로디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2016년 프랭크 오션의 앨범 ‘Blonde’는 로드가 “전통적인 곡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뉴욕시의 지하철을 타거나 고향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폴 사이먼의 1986년 앨범 ‘Graceland’를 자주 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레이 브래드버리의 1950년 과학 소설 단편 “There Will Come Soft Rains”는 ‘Melodrama’의 스토리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7년 기준으로 로드는 전 세계적으로 5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으며, 그래미 어워드 2회, 브릿 어워드 2회 수상, 골든 글로브 후보 지명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2014년 포브스 30 Under 30에도 선정되었다. 로드는 솔로 활동 외에도 브루즈, Bleachers와 같은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공동 작곡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Wikipedia](https://en.wikipedia.org/wiki/Lorde)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